방명록

  1. 김형국 목사 2013.08.24 10:30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성구 형제가 제 페북에 이런 질문을 남기셔서 제가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여기에 옮깁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무더위가 조금씩 지나가는 기미가 보이는 시기를 잘 보내고 있으신지요?
    제가 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스스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의문이 하나 생겨서입니다.
    imseeker에 글을 남겨보고 싶었지만, 휴먼블로그라고 로그인을 해야만 글을 남길 수 있다네요.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어서 방명록에 글을 쓸수가 없더라고요
    다른 블로그도 웬 일인지 접속이 안되고, 교회 홈페이지의 상담실에서는 글쓰기 방법을 알 수가 없었어요..

    제 의문은 이것입니다.
    '성경은 믿을만 한가'

    imseeker에 올려두신 같은 주제의 동영상은 잘 보았습니다. 그에 대한 이견도 없고요.
    다만, 성경이 믿을만하지 않은 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한 반대 근거들을 스스로 댈 수 없어서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길(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성경(특히 구약)에 나온 많은 글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성경의 상당부분(혹은 대부분)은
    근처 지역의 전설이나 설화 등을 모방하여 지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있고 진지한 마음으로 '나의 주장'을 검토하라고 요구하는 만큼,
    저도 동일하게 양쪽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 만으로는
    (성경 외적인 근거에서) 성경(특히 구약)이 실존하는 이야기의 기록인지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고대의 전설들을 몇개 공부했지만, 그것이 성경과 유사하다는 이유가
    성경이 그것들을 짜깁기 한 책이라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근거를 내어놓지 않으면, 성경이 '유사할' 뿐,
    짜깁기한 책이 아니라 사실을(혹은 진리를) 기록해 놓은 책이라는 주장을 펼 수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이 문제가 성경이 오류가 없는(믿을만한) 책이라는 믿음에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목사님께서 공부하신 것에서는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하나요?

    • 김형국 목사 2013.08.24 10:31 신고  수정/삭제

      학문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고요
      보편적인 상식에 근거하면 좀 쉬울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학문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가치중립적인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학자들도 많지요. 특히 과학철학이나 지식사회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요).

      그래서 모든 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에 근거에서
      자신의 학문을 전개해나갑니다.
      성경이 다루고 있는(특히 구약) 내용들은 현재 우리가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역사시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경우에도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없는데, 구약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여 자신의 뜻을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전제와 그런 것은 없다라고 믿는 전제에서,
      신학자라로 스스로 부르는 자들도 학문으르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자의 경우는 성경의 기록들이 오히려 주변의 다른 문화
      종교, 문서들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후자의 경우는 성경이란
      결국 주변 문화들의 영향을 받아 짜집기한 것이다라고 주장해요.

      제가 보기에는 이 논쟁은 끝이 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사시대에 근접한 역사 자료들은 원래 존재하였던
      자료들의 극히 일부, 1%도 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 자료의
      신빙성, 그 자료들의 전승과정에서의 오류와 왜곡 등을 판단해
      내기는 사실 매우 어렵지요.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 연구라는 것이
      실제로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더 비근한 예로, 신약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에
      의문을 갖는 학자들일수록 신약성경의 기록 연대를 주후 100년
      이후로 잡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예수 사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후기 교회로 인해서 과장, 미화, 왜곡되었다고 보고 싶은 거지요.
      그러나(이분야는 제 연구 분야와도 조금 연관있는데), 신약성경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할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는 신약 성경의 모든 책들이
      주후 50년 즈음부터 10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은 마치 이데올로기
      싸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전제에 따라 다양한 자료를
      해석하고 그 전제에 따른 결론을 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요.
      양쪽 진영 다.
      결국은 전제, presupposition, worldview의 문제로 귀결된다
      할수 있지요.

      한가지 더,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말 역시 정돈이 필요한 부분이예요.
      예를 들어 신약에서 예수의 부활 사건을 증거한 본문들이
      다소 상충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각기 자신이 본것을 증거하고 있는 이 상충되는 진술을
      교회는 수정없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각기 보는 관점에 따라,
      강조하려는 바에 따라 약간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증거들은 사소하고, 이 모든 증언은 하나의 결론을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그렇다면 이런 사복음서는 오류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어떤 역사책도 객관적 사실을 진술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록하였다할지라도 사람들은 각각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오류가 없다는 것이 수학책에거나 과학적 진리를
      진술하듯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고는 논리실증주의나 과학주의에 빠진 결과이지요.

      결국,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하고 여러 상충되는 증거들 가운데서
      무엇이 옳은지를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해요.
      99%의 생각없는 확신보다 51%의 숙고한 확신이 더 중요하다.
      all or nothing으로 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지식과 인식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공부와 고민과 숙고의 결과로 얻은 51%의 학신을 가지고.
      그리고 이 확신이 우리 삶 속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을 때'
      우리의 지적 추구로 인한 확신은 우리의 실제적 삶과 함께
      더욱 더 강력한 확신을 주게 되지요.

  2. Deficient 2013.06.12 11:17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에 무신론자 친구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가장 큰 주장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주장에 대한 제 대답은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FAQ 중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짧은 동영상의 대답과 같았습니다.

    이 친구는 자신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고 제 대답은 논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논리적으로 토론해야 하는걸까요? 논리적으로 토론해야 한다면 이 친구와 논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책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형국 2013.06.12 16:27 신고  수정/삭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친구의 주장을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나요? 특별히 비물질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은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신, 귀신, 사람의 영혼, 죽음 이후의 삶, 사람의 마음... 이 모든 것은 증명할 수 없지요. 증명이란 물질적인 존재에 대한 과학적 방식이지요. 물질적인 존재 조차도, 인간의 지식의 한계로 증명하지 못하다가, 후에 그 존재를 증명하게 되는 것들도 많지요. 예를 들어, DNA부터 시작해서 세균등이 다 그렇지요.
      친구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증명하는 일로 논쟁하기 보다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증명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군요. 아마 그 친구는 과학(특히 과학 철학)에 대하여서도 제대로 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구요.
      책과 관련되어서는
      손봉호, 나는 누구인가?의 1장 과연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
      C.S.Lewis의 순전한 기독교
      그리고 미국의 게놈 지도를 완성한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과학자가 쓴 "신의 언어"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파이팅!

  3. 2012.08.14 14:39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하은아빠 2012.01.08 17:4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국목사님께...

    안녕하세요. 김형국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평상시 제가 궁금해 한 많은 부분들을에 대해서 솔직한 답변으로 잘 강의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단번에 6강까지 다 시청을 했습니다.

    회피하려하고, 얼버무리려고 하는 교회의 식상한 답변들, 구시대적인 이해를 담은 교리를

    무턱대고 믿으라고 하는 식의 교리교재들에 대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을 때,

    목사님의 솔직하고, 진지하고, 진실된 답변들에 희망을 얻었습니다.

    저 또한 개신교 목사로서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 하나님께로의 바른 삶을

    살고자 다짐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제 1강인가 2강에서

    기독교를 접하는 3가지 양상

    지적, 문화적, 경험적 양상을 말씀하는 부분에서

    저 개인적인 상태를 보면 '지적'인 부분으로 많이 치우쳐있지 않은가 스스로 진단을 해봅니다.

    그 지적인 부분도 많이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사님께서 많이 바쁘시겠지만,

    행여 이 글을 읽어보신다면,

    저 3가지의 서로 다른 양상의 기독교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해 주실만한 각각의 책들이 없을까요?


    일단 프란시스 쉐퍼의 책을 탐독하고자 전집 1권부터 읽고 있는 중입니다.

    바른 배움을 얻고, 솔직하게 경험하며, 진실한 생활을 지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믿음의 선진들의 주옥같은 책들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들목교회와 참 먼곳(부산)에 살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나들목교회를 알고, 김형국목사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며 희망을 갖게 합니다.

    추운날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역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김형국 목사 2012.03.24 10:36 신고  수정/삭제

      하은 아빠님

      좋은 질문을 남겨 주어서 고마워요. 좋은 지적인데요. 세 가지 영역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 필요하겠네요. 지금 떠오르는 책은 없지만, 리서치를 하면 나올 것 같기는 하네요. 가능하다면, 이 세가지 영역과 관련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예요. 제가 머지 않아 이 주제로 설교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좋은 아이디어를 주신 것으로 감사를 드리고.
      1) 말씀하신대로 지적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읽으시고
      2) 지적 확신에 근거해서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기도하세요.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3) 그리고 삶 속에서 자신이 확신한 진리대로 살아가려 애를 쓰십시오. 이 때 그렇게 살아가는 공동체는 반드시 있어야겠지요?

      하은 아빠 강건하세요.

  5. 2011.10.07 00:40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형국 목사 2012.03.24 10:46 신고  수정/삭제

      질문을 너무 늦게 발견하였어요. **씨. 미안해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있냐고요?
      하나님은 우리 인지 능력 밖의 존재이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요.
      오히려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는 증거(evidence)는 여기 저기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린 북한산 봉오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 감탄했는데, 이는 유신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지, 이런 반응이 있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아니지요. 강의에서도 나오지만,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닌지는 사실 우리의 세계관적 선택이거든요.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강의를 들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특히 2강인 것 같은데, 1강부터 들어보세요.

  6. 김영상 2011.08.01 21:26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통 기독교에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왜 하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설명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일상적으로 생각하면
    (어쩌면 제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강하다는 인식이 더 강한 것 같거든요.

    하나님 아버지라고는 하나 하나님 어머니 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 지나가는 나들목 식구 2011.08.10 10:38 신고  수정/삭제

      ^_^ㅋ 안녕하세요. 궁금한것이 많으시죠.ㅎㅎ 저도 궁금한게 워낙 많고, 질문도 많았던 녀석이라 저도 그런 질문을 했었어요ㅋ 아직 명확한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해결은 됐어요.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것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모든 질문들에 대답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그럴러면 엄청나게 방대하고 두꺼운 책이 되어 버렸겠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다시 살려내셔서 같이 영원한 아름다운 낙원에서 살게 하실려고 하는 그 여정에 대해서 말해주기 위한 책입니다.

      성경에서 왜 하나님을 어머니라 하지 않고 아버지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어미니로 묘사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풍요로움을 다 상속해주시겠다고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아들로, 친구로 부르시기도 했지만, 창조주 이시다보니 권위가 강조되는 관계로써도 많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면 아버지가 조금더 설명하지 좋지 않았을까 생각 됩니다.

      지금 이 사이트까지 들어 오셔서 이렇게 질문 까지 하셨으면 뭔가 궁금한것도 많고 하나님을 알고 싶기도 한 상태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긴 한걸까? 라는 생각이 가장 크리라 봅니다.

      김명현 교수님께서 창조과학 세미나라는 것을 찍으시고 동영상으로 만드셨는데, 진화의 허구성, 공룡에 대해서, 그리고 그랜드 캐년에 담겨있는 대홍수의 흔적들 등등을 아주 흠미롭게 잘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창조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생각됩니다. 꼭 찾아 보세요. 혹시 못 구하시겠다면 저에게 메일하나 주시면 제가 보내 드리죠 ㅋㅋ
      제 메일은 marineya@naver.com 입니다.

      포기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계속 찾아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찾는 자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허공에 중얼거리는것 같으시겠지만
      " 나 당신 알기 원한다고 ... 내가 본적도 없는데 어떻게 믿냐고 , 믿을수 있는 증거를 조라고... 좋은 책, 사람, 영상들을 통해 내가 깨닫게 해조라고 " 기도하세요. 초신자의 솔직한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 놀라운 능력을 경험해 보세요.

      하나님을 영상씨를 사랑하십니다.

    • 김형국 목사 2012.03.24 10:42 신고  수정/삭제

      좋은 질문.
      지나가던 나들목 식구도 감사.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택한 것은 한계가 있으면서도 필요한 것이지요. 하나님에게는 사랑 뿐 아니라, 정의도 있거든요. 사랑과 정의는 동전의 양면. 그래서 사실 하나님은 모성적인 모습도 많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요. 때로 하나님을 어머니처럼 느끼는 것도 저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수천년 전부터 부계사회였던 상황을 볼 때, 건강한 아버지 상을 가정하고, 하나님 아버지로 표현한 것은 문화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절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7. 2011.07.22 11:45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하나복DNA네트워크 2011.05.22 09:15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원본 글쓴이는 '최진용'님 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예수님이 일단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다지 와닿지가 않는다고 하더군요..
    여러 말씀이나 말들로 설망해주려했지만
    정리해서 딱 뭐라고 얘기해주기가 힘들었습니다
    뭐라고 얘기해주면 좋을까요..?

    • 하나복DNA네트워크 2011.05.22 09:14 신고  수정/삭제

      [이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김형국목사의 답변입니다]

      이런 답변은 그 친구가 기독교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에 회피하는 답변일 가능성이 많아 보이네요. 그 친구는 외국인들이라면 그들의 사상이나, 글도 보지 않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일까요?

      아닐꺼예요. 이런 경우, 인류보편적 진리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민족적 또는 지역적 진리를 찾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지요?

  9. 하나복DNA네트워크 2011.05.22 09:1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원본 글쓴이는 '문소망'님 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요청합니다

    요즘..자꾸 제속에 분노가 쌓입니다

    모태신앙이지만

    제 삶엔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분노에 차있고,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고 죄스럽습니다

    기도를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이런 저의 모습들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 하나복DNA네트워크 2011.05.22 09:10 신고  수정/삭제

      [이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김형국목사의 답변입니다]

      분노의 문제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분노는 여러 통로를 통해서 우리 속에 쌓이게 된 것인데요.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도 있도, 적절한 상담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해결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매우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하는 경우도있어요.

      자매의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는 잘 몰라 일반적인 답변을 드릴 수 밖에 없는데, 가장 중요한 원리는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대상을 용서하고 수용하는 것이지요. 중요한 원리이지만, 실제적으로 쉬운 방법은 아니지요.

      제가 한 "용서"에 대한 설교 시리즈를 들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고, 만약에 개인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나들목 교회의 신호기 목사님께 연락을 주세요. 적절한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예요.

  10. 하나복DNA네트워크 2011.05.22 09:1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원본 글쓴이는 '신천은'님 입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너무 궁금한게 있어서 답을 찾고 싶어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원래는 혼자 성경을 읽으며 고민해보고 성찰해보려고 했으나 질문이 예매하고 제 나름대로 해석하는걸 피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바울의 고백인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얼마전에 교회에서 준 거지인가 왕자인가. 그리고 세미나에서 내 자아가 죽어야 예수님이 들어오신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바울의 고백에 보면 이제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 거지와 왕자에 보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내적치유 세미나 7성경의 원리를 듣다가 사탄은 우리자신이 모든걸 할 수 있다고 빛의천사로 가장해서 다가온다는 말이있고 우린 아무것도 할수없다고 나옵니다.(전 지금도 자기 계발서를 읽고있고 예수님의 기준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킬수 있는 기술들을 써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시겠지만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은 할 수 있다가 모토입니다. 저도 예수님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제가 혼란스러운 것은(정리가 되지 않아 답답하네요)
    첫째는 내안에 계신 그리도께서 사신것이 어떤것인가요?
    제 노력이 따로 필요하지 않는것 같아 여쭈어봅니다. 달란트에 예화에 보면 1달란트의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주인에게 꾸중을 들었지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만 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없는걸 인정하라고 말할때 그게 잘안되는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는것도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것도 삶을 열심히 살겠다는것도 내 가족을 부양하겠다는것도 더이상 나의 선택이 아닌 제 안의 예수그리스도의 행하심이었다면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 성경보고 기도하는것도 더이상 제 의지나 노력이 들어가있지안다면 위험해질것같습니다. 제 기분내키는대로 하고 이제 예수님이 주인이니까 난 노력하지 않아도 되 이런상황 제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인정하면 무기력해 질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구요 예수님안에서 모든것을 할 수 있다는데 이건 또 위에 말씀과 반대되는 상황이자나요.
    제가 지금 혼란스러운 점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노동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게 제 의지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한거고 내 의지라는게 내가 주인된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예수님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인인거자나요??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제가 주인되서 노력하는 상황.
    그리스도께서 사신것, 내 노력 이 두가지가 고민에빠지게 됩니다.
    1. 제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님께서 사신것이라는게 어떤건지 궁금하구요.
    2. 과연 자신이 노력하는게 자신이 주인된상태인지 궁금합니다.
    3. 그리고 행동을 함에 있어서 성령님께서 도움을 주시는지요?

    예수님을 사랑하고 행하고 싶은데 행함이 내가 주인이라면 하면 안될 것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성경읽기나 기도를 행하지 않을때 오는 감정들도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하나복DNA네트워크 2011.05.26 14:12 신고  수정/삭제

      [이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김형국목사의 답변입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이네요. 사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다는 내용은 기독교 구원관에 가장 중요한 요체이지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게 깨달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의 성숙이라고 할 수도 있구요. 그래서 나들목에서 나누는 풍성한 삶의 기초에 이 내용이 깊이 다루어져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갈 2:20, 고후 5:17등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실체에 대한 말씀이지, 실제로 내가 체험하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이루어진 일, 더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보시는 것(이것보다 세상에 더 중요한 것은 없겠지요?)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전인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믿음이지요. 그렇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니 내가 죽었다는 것이 내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에 근거해서,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구원을 받기 위한 우리의 어떠한 행함도 효력이 없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가 그 이루어진 구원의 사실에 기초하여 사는 것은 행함이 없이는 불가능하지요.^^